
유람객들이 헤이룽쟝 막하현 북극촌에 도착한후 “이 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북을 찾았네!”라고 말한다. 북극촌은 대흥안령산맥의 북쪽기슭에 있다. 이곳은 중국의 제일 북쪽끝이다. 최고 위도는 북위53°33′30″이다. 비록 일년중 절대다수의 시간에 기온은 낮은축이지만 우리가 촌에서 취재할때 곳곳에서 개혁개방30년의 발전을 거친후 이 변경마을의 지속적인 경제발전의 온기를 느낄수 있었다.
목재를 운반하던 말 썰매 끌고 유람객 날라
펑샌중(冯顯宗)은 현지 본토박이 이고 또한 북극촌의 노촌장이다. 그의 소개에 따르면 개혁개방전 이곳에는 3개의 생산대가 있었다.——리신(立新)、첸소우(前哨)과 판수(反修). 1984년 이 세게대는 합병하여 막하촌을 형성했다. 2002년 촌은 관광의 각도로부터 출발하여 막하촌을 북극촌으로 탈바꿈했다.
“북극촌은 임업으로부터 현재의 관광업 위주인 다종경영으로 변신했다. 현재 관광종업 인수는 전 촌 인구의70%-80%차지하고 관광수입은 촌민들의 수입의 60%를 점한다.”생활을 변화를 예기하면서 펑샌중은 “난 수산업으로 부터 유람객들을 위한 서비스 까지 년수입은 이전의1000여위안으로 부터 현재의 3,4만위안까지 증가했다.”
막하현 위원회 선전부장 류광린(劉廣林)의 소개에 의하면 옛날에 북극촌의 촌민들은 겨울 말 썰매를 끌고 산위로부터 나무를 운반해 내려 운비를 벌었다. 1998년에 이르러 국가의 천연림 보호공정이 실시된후 사람들은 다른 출로를 찾기 시작했다. 이때로 부터 사람들은 농촌 마을의 특수한 지리상 거대한 기회를 발견했다.
펑은 당시 관광업의 선도자라고 할수 있다. 그는:“당시 저는 반년이란 시간을 들여 끝내 결정내렸다. 5.5만위안을 들여 144평방의 여관 하나를 삿다. 당시 무척 근심하였엇다. 사람들이 오지 않을가봐, 후에 판점이 잘나가자 다음해에 촌에서 또 네집 다섯집정도를 차리였다.” 5,6년의 발전을 거쳐 이곳의 관광업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현재 촌에는 여름에 50집의 여관이 있고 겨울에는 30여집의 여관이 있다.이밖에 또한 많은 농가 여인숙이 있다.
“지금의 말 썰매는 겨울에 나무를 끌지 안는다. 모두 얼음위에서 유람객들을 끌고 다닌다. 이는 이미 북극촌의 하나 풍경으로 되어버렸다.”펑은 이렇게 말한다.
제일 아름다운 건물은 학교
관광업이 뜬후 촌의 거리마다가 깨끗해졌다. 어느 촌민 한분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전 우리는 늘 풀을 뽑았지만 현재는 온 하루 풀을 심는다,. 이전에 나무를 많이 베면 상이 있었지만 현재는 나무를 많이 심으면 상을 준다. 모두 바뀌였다.!”
촌에는 현재 적지 않은 공용시설들이 있다. 그중 변화가 제일 큰것은 중심학교이다. 인구가 적기 때문에 촌의 소학교와 중학교는 하나로 합했다. 펑은 :“내가 학교 다닐적에 학교는 아직 무커렁(木克楞,나무로 세운 집)이 였다. 당시 우리는 큰 철난로로 몸을 녹였다. 난로 옆은 따뜻했으나 난로와 멀리 떨어진 곳은 추웠었다. 후에 단층집이 세워졋다. 현재 중심학교는 촌에서 제일 아름다운 건축물이다.당연히 스팀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촌에는 10년전부터 대학생이 있었다. 지금 대학교에 붙은것은 무슨 희하한 일이 아니다.
촌에는 근 몇년이래 많은 종합서비스 장소를 건설했다. 농구장、열람실、토산품 진열실、탁구실등 이다.
여관을 경영하는 동시에 펑은 그의 형과 함께 한척의 유람선을 경영한다. 현재 촌에는 십여척의 유람선이 있다. 모두 촌민 개인 경영이다. 1999년 촌에는 첫번째 택시가 나타났다. 현재 전 촌에는 이미 십여대의 개인겨영 택시가 있다.
그리고 몇집의 수상식당이 있다. 모두 촌민이 자체로 세운것이다. “이곳의 요리사는 아무런 훈련도 거치지 않은 사람들이다. 촌의 아줌마, 며느리.. 집에서 어떻게 만들면 식당에서도 어떻게 만든다. 순수하지요!”류광림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의 소개에 따르면 촌민은 그외에 또한 특색 재배업을 한다. 본래는 감자、밀、황두와 배추를 심었지만 현재 는 박、약재、아마、장식용 식물등 많은것을 심는다.“이곳에 심은 박은 북위 53도의 박으로서 중국에는 이곳밖에 없다. 온도 차이가 크고 해빛 쪼임시간이 길며 또한 토지가 비옥하여 이곳이 박들은 모두 달콤하다. 농민들은 모두 농가비료를 사용한다. 이곳의 겨울은 아주 추워 해충이 적으므로 농약을 쓸 필요가 없다. 하여 ‘녹색유기박’으로 불리운다.”
농가 여인숙 특색이 뚜렷해
북극촌에는 현재 많은 농가 여관이 있다. 평상시는 촌민들 자신이 안에서 생활하고 유람객들이 오면 여관으로 내놓는다. 촌민들은 이 방법을 최초에 텔레비안에서부터 배웠다고 하였다. 현재 집집마다 폐회로 텔레비를 갖추어 촌민들의 관념도 빠르게 전변하고 있다.
농가 여관 경영에 대하여 펑은 자신의 독특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유람객들의 수요로 부터 출발하여 우리는 응당 현지의 특색적인 농가 여관을 발전시켜야 한다. 저의 여관은 강변에 있다. 순 목제로 만든 집이다. 이는 전국에서도 보고 드물다. 다만 헤이룽장 일대의 변경에서만 있다. 나는 방안을 하얗게 칠하고 온돌을 만돌을 만들어 놓았으며 집 앞뒤는 모두 채소밭이다. 유람객들이 오면 자체로 밥을 해먹을수 있다. 오직 부동한것이라면 화장실을 실내로 옮겨온것이다. 여관이 지나치게 현대화 하여선 안된다. 또한 성급 호텔같은것도 지을 필요는 없다. 유람객들은 향수하러 온것이 아니고 당지 민속의 풍토와 인정을 감수하러 오는것이다.”
미래의 타산에 대하여 펑은 그와 촌민들은 한창 북극촌관광회사를 차릴 계획이라 하였다. 현재 초보적인 기획에 불과 하지만 많은 촌민들은 적극성이 대단하다고 하였다.“회사는 주식제형식으로 성립하고 우리는 학식의 제한으로 전문 경영인을 고용하여 관리하려 한다. 우리의 목표는 회사를 출시시켜 자본시자에 진입하는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