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척의 러시아 백색 객선이 천천히 물가에 닿았다. 기적소리와 함께 수백명의 금발에다 백안인 러시아 유람객들이 푸른 하늘과 아름다운 해빛아래에서 웃고 떠들면서 배에서 내려 통관홀로 들어선다. 홀에는 이미 먼저 도착한 러시아인들로 북쩍하였다. 이는 기자가 일전에 흑하항에서 목격한 한 장면이다. 흑하시는 헤이룽쟝 남안에 자리잡고 있다.강을 사이두고 북안은 러시아 원동 3번째 큰 도시 부라거위신시코이다, 두 시 사이 제일 가까운 거리는 750메터밖에 안된다. 하여 쌍자성이라 불리운다.
국경 수비 검찰관원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주말은 입경 유람객의 러시 아워이다. 제일 많을적에 하루에 입경 인수가 6300명에 달한다.
도로 표지, 상점 간판들은 모두 러사아문으로
“노 펑(老冯)!”,부두에서 한 국경 검문 인원이 한척의 러시아 객선을 향해 소리쳤다.
“뭔 일이야?”북경 말투가 나는 중국 표준어와 함께 생각밖으로 배에서 하얀 피부 금발머리의 러시아인이 종종걸음 치며 나왔다. 앞에가서 한담하여 그는 워라비웨부C·K,중문 이름은 펑다지(冯达吉)이다. 올해 62세인 그는 유창한 중국어로 자기의 경력을 이야기 했다. 아버님은 중국 사람,어머님을 러시아 사람이다. 그는 북경에서 중학교를 졸업한후 러시아로 돌아왔다. 55세에 퇴직한후 줄곧 중-러무역에 종사하였다. 이 몇년래 겨울을 내놓고 노펑은 기본상 왕래하는 상선에서 보냈다. 한 주일에 한번 러시아에 있는 집으로 가고 기타 시간은 모두 흑하에서 보냈다. 갈라질때 노펑이 남겨놓은 핸드폰번호는 뜻밖에도 그가 중국에서 사용하는 핸드폰 번호 이다.
흑하의 거리、공원、상점、호텔등 어디에서나 삼삼오오 떼를 진 러시아 유람객을 볼수 있다. 도로 표지 상가들의 간판등 모든 공동시설에는 모두 러시아문이 있다. 110、120전화도 이중 언어이다. 흑하는 물가가 싸고,상품이 풍부하며 경치가 아름답다. 하여 많은 러시아인들이 이곳으로 흡인되어 쇼핑、여행、사업、생활한다. 동시에 러시아켠의 수요도 흑하의 택시、요식서비스등 상관산업의 발전을 끌어 당겼다.
흑하 시위선전부 부부장 샤충워이(夏重伟)의 소개에 따르면 흑하시는 본래 한개구역뿐인 중러무역시장을 전부의 도시구역으로 확대하고 러시아 공민은 유효한 증명서만 가지고 있으면 비자를 밟지 않고 이 구역에 들어서서 쇼핑、거주와 사업을 할수 있다. 두 시 사이의 개항구는 중러 양국간에 처음으로 되는 매년 365일, 매주 7일, 매일12시간 통관하는 변경개항 도시 이다. 하루에 수차례 왕복할수 있다. 현재 최소100여호의 러시아 가정이 흑하에서 집을 사고 정착하였다.
변경무역은 수박의 수출로부터 시작되어
흑하항 또 하나의 부두——화물 검사 현장에서 우리는 강면위에 한척의 적색 기선이 정박하여 있는것을 보았다. 배위에는 러시아로 수출하는 대형 기계들로 가득차 있었고 지면에는 한창 배에 오를 준비하고 있는 근 백대의 화물차들이 줄을 서 있었다.
흑하시 항구 사무실 주임 리저구(李泽國)는 이렇게 말했다. 매일 많은 중러 화물선들이 두시사이를 드나들고 있다.두시 사이의 운수는 사계절 끊어지지 않고 있다.여름에는 물위에서 배가 뜨고 겨울에는 얼음위에서 차가 다닌다. 춘추 두 빙하계절에는 수륙 양용 보트가 달린다. 우리 나라의 경제 발전에 따라 이 몇년내 항구들 드나드는 화물들도 변화하고 있다. 처음에는 수출은 주요하게 채소,과일、식품、복장과 경공업 물품이였지만 현재는 가구、가전、마이컴、자동차、농업 기계등 고부가가치 생산품도 대량적으로 수출한다. 화공 원료、선박연료、전력등 대종물자들도 수입해 들여 온다. 작년 항구의 여객 수송량은 백만인차를 돌파하고 화물량은 38.6만톤을 넘어섰다.
하지만 백여년 역사를 갖고 있는 흑하항도 줄곧 번영해왔던것은 아니다. 샤충워이 부부장은 회억하면서 말했다. 지난 세기 80년대 중기까지 20년 중단되어 있던 중러변경무역이 회복하기 시작하였다. 구체적인 시간은 1987년9월2일 흑하변경무역회사에서 208톤의 수박으로 306톤의 비료를 바꾸었다. 이를 시점으로 항구의 변경무역을 신속히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조산아 통관을 위해 특수한 조치
20년전 흑하는 아직도 낙후한 변경마을 이였었다. 전 도시에는 4집의 식당밖에 없었다. 저녘이면 가로등이 없어 칠흙같이 어두웠다. 변경무역의 발전으로 조용했던 마을이 하루사이에 많은 일확천금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왔다. 여관이 모자라 공원의 긴 걸상과 땅은 사람들이 다투어 빼앗는 “침대”가 되어버렸다. 현재의 흑하시는 고층 빌딩들이 줄을 서고 호텔 판점들이 사처에 있다. 저녘에 들어서면 온 도시가 등불이 환하고 채색 꽃등들이 깜박인다. 부라거위신시코시의 제1임 시장 툰네츠도 감탄을 금치 못하고 이렇게 말했다.:“어릴적 흑하는 하나의 촌락이였었는데 현재는 하나의 현대화 도시이다.”
사실 흑하항의 통관환경과 서비스방식도 점차적으로 현대화와 인간화로 나아가고 있다. 임신9개월의 러시아적 유람객 이렌나가 흑하에서 쇼핑시 갑작스레 복부가 아파나고 조산하였다. 하지만 그가 아이를 데리고 귀국시 이 의외로 태여난 아이가 출경증명이 없어 출경을 할수 없게 되었다. 흑하항 변경 검사소에서 이 정황을 요해한후 특수한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변경 검사인원들은 전문 이렌나 모자간 출겨을 위하여 사업시간을 늘이고 “녹색 체널”을 개설했다.
1987년부터 흑하항은 도합1.2억위안을 투자하여 개조하고 새롭게 항구기초시설을 건설하고 본래 분산되었던 항만 사무、국세、해관、은행등 30여개의 단위를 하나의 플렛폼에서 사무하게 만들었다. 현재 흑하항의 화물부두에는 천톤급의 버드가 9개 있고 유람객 운수부두에는 3600평방메터의 검사홈과 2400평방메터의 휴식홈이 있다. 이는 항구 출입경과 국내의 철로、공로、항공과 어진 입체적인 구조를 형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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